전기/전기이야기

[스크랩]천재 과학자 테슬라

22.9KV 2010. 11. 7. 04:26

테슬라 (세르비아/미국 발명가)  [Tesla, Nikola]

1856. 7. 9/10 크로아티아 스밀란~1943. 1. 7 미국 뉴욕 시.
세르비아계 미국의 발명가·연구가.

 

 

 

대부분 교류 기기의 기초가 되는 회전하는 자기장을 발견했다. 1884년 미국으로 이민했으며 그 다음해 자신의 교류 다이너모와 변압기, 전동기 체계에 대한 특허권을 조지 웨스팅하우스에게 팔았다. 1891년 테슬라 코일을 발명했는데 이는 라디오 기술에서 널리 쓰이는 유도 코일이다.

 

그는 세르비아 혈통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리스 정교회의 사제였고 어머니는 학교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매우 총명했다. 시적 감수성을 지닌 몽상가였던 그는 성장하면서 이러한 초기의 성품 외에 자기수양과 정확함을 추구하는 성품을 쌓아나갔다.

 

오스트리아의 그라츠공과대학과 프라하대학교에서 공업기술자로서 교육받았다. 그라츠에서 처음으로 그람 다이너모(Gramme dynamo)를 보게 되었는데, 이는 발전기로 작용했고 반대로 작동시키면 전동기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교류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나중에 부다페스트에서 회전하는 자기장의 원리를 가시화했으며 교류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첫걸음이 되었던 유도전동기 설계도를 개발했다. 1882년 파리로 가서 콘티넨털에디슨회사에서 일했다. 1883년 슈트라스부르크로 발령받아 일하던 중 일과 후 시간을 이용하여 그의 최초의 유도전동기를 만들었다.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도착했는데, 당시 주머니에는 단돈 4센트와 자신이 쓴 시 몇 편, 항공기에 사용하기 위한 계산결과밖에 없었다. 처음에 T. 에디슨에게 고용되었지만 배경과 방법이 전혀 달라 결별했다.

 

1885년 5월 피츠버그에 있는 웨스팅하우스전기회사의 사장이었던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그의 교류 다이너모, 변압기, 전동기의 다상(多相) 체계에 대한 특허권을 샀다. 이 거래로 인해 에디슨의 직류식과 테슬라-웨스팅하우스의 교류접근법간의 거대한 세력투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결국은 테슬라-웨스팅하우스의 체계가 승리했다. 테슬라는 곧 자신의 연구소를 설립했고 그곳에서 그의 창조력을 자유롭게 발휘했다. 나중에는 W. 뢴트겐이 1895년 X선을 발견할 때 사용한 것과 비슷한 역광선 사진을 써서 실험을 했다. 그는 탄소 버튼 램프, 전기공진의 동력, 다양한 형태의 번개에 대한 연구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실험을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의 체계를 이용해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세계박람회에 점등을 했다. 그의 성공은 나이애가라 폭포에 최초의 전력기구를 설치하는 계약을 따내도록 하는 데 기여했으며, 여기에는 테슬라의 이름과 특허번호가 기록되어 있다. 이 시설로 인해 1896년경 버펄로에 전력이 공급되었다. 1898년 원거리조정에 의해 움직이는 원격 오토메틱 보트를 발명했다고 발표했다.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모인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보였다.

 

1899년 5월부터 1900년초까지 머물렀던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지구정상파를 발견했는데, 그는 이것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여겼다. 이 발견으로 지구가 도체로 사용될 수 있으며 소리굽쇠처럼 특정한 주파수의 전기진동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도선 없이 40㎞ 떨어져 있는 200개의 램프에 점등을 하고 41m에 달하는 섬광을 내는 인공 번개를 만들었다. 한때 자신이 다른 행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콜로라도 연구소에서 접수했다고 믿었는데, 몇몇 과학잡지들은 이 주장을 조롱했다. 1900년 뉴욕으로 돌아와 미국의 재정가 J. P. 모건이 제공한 15만 달러의 자본으로 롱아일랜드에 세계무선방송탑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전화와 전신에 대한 그의 특허권의 51%를 모건에게 할당해주고 대부금 지불을 보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적인 통신을 가능하게 하고 화상과 소식, 일기예보, 주식기사 등을 보낼 수 있는 장비를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계획은 경제공황과 노동쟁의, 모건의 지원철회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는데, 이것은 테슬라의 커다란 패배였다. 그뒤로 터빈과 다른 계획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금 부족으로 그의 생각은 공책 속에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기록들은 지금도 개발되지 않은 단서로서 공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1915년 그와 에디슨이 노벨상을 공동수상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오보임이 판명되자 크게 실망했다. 1917년 테슬라는 미국 전기공학자협회가 주는 가장 큰 명예인 에디슨 메달을 받았다.

 

테슬라가 죽은 후 외국인 재산관리원이 그의 트렁크를 압수했는데 논문, 졸업장과 그밖의 포상, 편지, 실험 노트 등이 들어 있었다. 이것들은 테슬라의 조카인 S. 코사노비치에게 상속되었고 나중에 벨그라드에 있는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수백 명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 시의 세인트존 대성당을 메웠으며, 언론·방송사는 위대한 천재를 잃었음을 알렸다. 3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현대의 수많은 기술적 발전으로의 길을 연 세계의 탁월한 지성 중의 한 사람에게"라는 찬사를 보냈다.

 

자료출처 : 브리태니커(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22t265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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